KUR Creative


섣부른 추상화 글 뒷풀이

뒷풀이 글은 그냥 생각 나는 대로 지껄인다.

BGM으로는 음.. 유모레스크가 딱이겠다.
https://youtu.be/gqfpDo-sSs8

뮤직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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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과 그림들이 있었다. 프로그래밍의 본질, 문제와 솔루션의 구분, 온갖 개드립, ... 너무나 많은 것을 담다 보니 글이 쓰레기 같아졌다. 마치 모든 것을 다 하려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흔한 갓바 풺웤 같았다.

나는 보통 글을 쓸 때 먼저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고 관련된 ZK 노트나 링크를 BUF 라고 적어진 문서에다 전부 모아두고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가며 내용을 더 추가하기도 한다. 이번 글은 역대급이었다. 하다 보니 BUF가 19000자를 넘어 갔다. 그걸 어떻게든 글 하나에 욱여넣으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글이 3개로 쪼개져서 이번에 쓴 제약과 추상화에 대한 글에 7000자, 앞으로 나올 "프로그래밍의 본질과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한 글"에 5000자(미완성), 그리고 BUF에 나머지가 7000자가 남았다.

이게 피드백이 없고 동기가 없어서, 글을 쓰기 싫어서 그런가 했더니.. 그냥 애초에 쓰기 쉽지 않은 글이었다. 이걸 쓰는데 얼마나 시간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몇개월 동안 묵혀지다가 이제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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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이런 글을 썼을까? 바로 내가 섣부른 추상화로 나의 뚝배기를... 아니 손꾸락을 찍어버린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나처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적었다.

resource/너네는 이런 거 하지 마라.png

언젠가 길고 자세하게 낱낱히 썰을 풀어야 하는 그 사건 - 거대한 실패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섣부른 추상화였다. 특히 5번을 새로 짠 이유는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 크지만, 1년 이상을 공들인 여섯번째 프로그램 식질머신 매니저는 섣부른 추상화를 적용한 점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식질머신 매니저는 놀랍게도 Clojure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섣부른 추상화로 망했다. 놀랍지 않은가? 역시 쓰는 새끼가 븅신이면 근로저가 아니고 근로저 할애비를 갖다 놔도 븅신같이 짠다.

정말 자유로운 언어에서 정말 빡빡한 제약을 걸며 코딩을 했고, 그 제약을 만드는 데 3~4달을 들였다. 그리고 사용한지 일주일 만에 제약과 추상화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서 계속 변경하기 시작했다. 테스트 데이터가 아니라 실제의 대량 데이터가 들어오자, 그때까지 작성한 모든 것이 무너졌다. 결국 제약의 대부분을 완화했고, 내게 남은 건 쓰레기 같은 인터페이스와 점점 아프기 시작하는 손가락 뿐이었다.

그 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내 손으로 지옥을 만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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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해버린 나는 그 지옥을 더 이상 고칠 시간도 없었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 했다. 그런데 이렇게 된다고?

사실 이제서야 생각하지만, 그 때 손이 아프기 시작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의 나는 정말 완전히 미쳐 있었다. 식질머신 매니저를 만든답시고 석사 졸업을 벌써 두 학기를 연기한 상태였다. 만약 손이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로 한번 더 연기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결국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으로 쓰레기 같은 졸업 논문을 쓰고 어떻게든 졸업은 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소모되어버린 나는 한동안 [그렇게 좋아하던 프로그래밍]을 쉬었다.

아니다. 잘못 기억하고 있다. 사실 정신이 말짱했다. 손만 아니었어도 더 할텐데! 7번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데!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다.

resource/완전히 미쳤군.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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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손이 아파서 1년... 정확히는 6개월을 쉬었다.
이 이야기는 좀 더 문학적으로 쓰고 싶은데..

한 때 삶의 거의 모든 걸 바쳐서 프로그래밍을 했는데,
결국 나의 실수와 한계로 프로그래밍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당신은 짐작할 수 있는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을 끝까지 좇다가
결국 그것에 배반당하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은 어떤 심정일까?

나는 무서웠다. 손이 아파서 더 이상 프로그래밍을 할 수 없는 건 아닐까?
이것으로 내 인생에서 키보드를 쓸 수 있는 시간이 끝나버린 것은 아닐까?

석사 2년간은 그나마 돈이 쥐꼬리 만큼이라도 나왔지만, 3학년 때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돈도 안 벌고, 다른 무엇도 하지 않고, 프로그래밍만 했다. 그런데도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래도 다시 한번 하려고 했다.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나를 막은 것은 결국 아파오던 손가락이었다.
더 이상 프로그래밍을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막아세웠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면 나는 멈추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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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엄살 염병이다. 지금 키보드로 이글을 쓰고 있다. 엌ㅋㅋ

resource/이-글.webp

정신적인 부분이 큰 거 같다. 석사 3학년 때는 심지어 머리까지 빠졌다.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져서 떠다니더라. 그거야 뭐 상관 없는데 손을 못 쓰게 되는 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온갖 병원을 다녀도 별 차도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들었다.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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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에서 심정이 어땠냐고 물었다. 어떤 심정이었냐고?

그 때 내 심정은 이랬다:

왜 나만! 왜 나마아아아안!!!!! 왜 손이 아픈건데! 한 판만 더 해!!!

나는 울지 않았다. 4는 그냥 멋있는 척 하려고 쓴 거다. 애초에 문학적이라 하지 않았나?

세상에 도박에서 지가 실수해서 잃고는 질질 짜는 도박사가 있을까?

내가 딱 그짝이었다. 에이... 다음엔 딸 수 있을거야!

https://blog.naver.com/wngus2358/223096589800
resource/실패담.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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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그 7번째 시도를 하고 있다. 그렇다. 2년 말아 먹고 1년 더해 3년 날려 먹은 그 짓을 지금 또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달랐다. 아직 다 만든 건 아니지만, 일부에서 놀라울 정도로 성공했다. 그 성공을 확인한 것이 바로 어제다.

그리고 오늘, 갑자기 프밍이 땡기지 않는 날이 왔다. 오늘은 안 되는 날이구만! 그럼 뭘하지?
그래서 글을 썼다.

7번째를 하려고 요새 식질머신 매니저를 마구 파헤치고 부관참시를 하고 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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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이야기.. 면접에서 하고 싶었다. 내가 바보 병신이었지.
지 실패한 걸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을 뽑고 싶어하는 새끼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resource/그른 섹기가 새상의 어딧어.png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이야기 들어 준다고 오라는 데가 있었다. 거기 갔는데 정작 면접에서는 대표가..

이걸 뭐 5번을 해? 이 새끼 병신인가?

이러고 끝내더라고. 굉장히 모욕적이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씹새끼들...

애초에 내가 이상한 기대를 한거긴 했지만... 내가 누굴 뽑는 위치가 되었다면,
세상에 어쩌면 나처럼 약간 맛이 간 놈이 또 있어서 면접에서 당당히 실패담을 이야기한다면,
그 때는 꼭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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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당시에는 그냥 그랬지만, 나중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위로를 받고 감동해서 운 적은 있다. 아.. 말하기 좀 부끄러운데.. 나중에 그 작품에 대해서도 곧 이야기해 보자. 하... 씹덕물 보고 울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려나...

resource/울었습니다.jpeg

내 마음의 위험한 생각들을 풀어냈더니 좀 후련해졌다.

결론? 글 두 개 더 나올테니 기대하시라.

꽉 잡아! 자! 간다~!

#chat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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