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R Creative


나 같은 사람이 잘 없더라

한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들고 싶은 것이 없다면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하지 마세요".

그러면서

"만들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고 기록해두세요.
그러다 시간이 나면 만들고 싶은 것들 리스트에서 지금 할 수 있겠다 싶은 것을 만드세요."

이렇게 프로젝트 중심의 학습 방법을 추천하고 다녔다.

근데 이게 가능한 사람들이 거의 없음.
프로그래밍을 좀 할 줄 알게 되었어도 뭔가 주도적으로 만드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아마 이렇게, 나한테 어떻게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나 프밍은 어케 잘하나? 이런 걸 묻는 사람들은
애초에 만들고 싶은 게 없어서 묻는거지.
그런 게 있는 사람은 이미 만들고 있어서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

만들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보니까 프로그래밍을 하기도 전에 만들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들은 잘 없더라.

나는 프밍에 제대로 입문(대학 입학)하기 전부터 만들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정말 정말 드문 것 같다.
아마 나도 중딩때 약간이나마 맛을 봐서 이런 저런 상상을 했던거겠지.

사실 그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프로그래밍을 좀 배우고 나서도 만들고 싶은 게 없는 사람들이 있음.
흠.....


첨단 기술 중에 프로그래밍만큼 낮은 비용으로 새로운 걸 쉽게 만들어내는 기술이 없는데
이런 멋진 기술로 남이 시키는 것만 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만들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들.

이상한 건 나

그게 딱히 나쁘단 것은 아니다.
옛날엔 솔직히 약간 무시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냥 다른 것이고, 오히려 내가 특이한 사람이다."

딱히 만들고 싶은 게 없어도 실력 자체는 만들고 싶은 게 있는 사람보다 뛰어날 수 있다.
마음가짐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실은 소년만화가 아니라구


그냥..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이 적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위에 나왔던 질문 같은 건 뭐라 답을 해주기 어렵다.
질문에 공감이나 감정이입 자체가 안 된다. 나는 항상 만들고 싶은 게 있었기에...

몇번 답정너처럼 프로젝트 하세요 라고 말 해준 적은 있는데 별 의미가 없는 거 같음
걍 취직이나 잉턴이나 하라고 했어야 했나


 게임 업계?

https://twitter.com/iron4gg/status/1286230684256710657

게임과 다른 분야와의 차이는 게임 쪽이 다른 분야에 비해 '자기 분야에서 일하는걸 조금 덜 싫어하는 사람'과 '나는 게임 만드는걸 좋아해라고 구라치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는 것 정도 뿐이라. 게임개발자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던데, 그런 사람들은 과거든 지금이든 극소수였고 그게 정상

업계에서 경력이 5~20년이 쌓여도 실력이 A급이 되는건 결국 소수이고 나머지는 B~C급에서 경력이 끝나는 것이나, 회사에서 가성비가 떨어져 밀려난 뒤에 1인개발자 같은걸 못하는 이유도 결국 다 마찬가지인데, 근본적으로 '사실은 별로 게임을 만들고 싶지 않다, 고생하기 싫다'가 깔려있기 때문임

그래서 이런 '고생하기 싫고, 돈 주니 마지못해 하는, 의욕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의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조직이고 회사. 그런 의미에서 회사는 인류의 훌륭한 발명품인데, 혼자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원래 극소수이니, 자기가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 없다

그래서 회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업계 밖으로 사라지는 이유도 '조직에 속해있어야 겨우 의미있는 결과물을 어찌어찌 만들 수 있던 사람'이라 그렇다. 회사에 속해있던 사람 중에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사람이 많던데,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조직 밖으로 나가면 더 너프될 뿐이라

한국에 인디붐이 분지도 벌써 5~7년 정도 되었는데, 회사에서 잘 나가는데도 굳이 뛰어든 사람이 아닌, 회사에서 밀려난 김에 뛰어든 사람은 정말 누구 하나 예외없이 짧게는 3개월, 길어도 2년 사이에 위에 적은 자신의 본성과 한계를 실감하고 회사로 돌아가던가 업계를 떴었는데 이 또한 같은 얘기

그렇구나
그러니까 푸불님은 정말 대단한 게 맞다.

결론

만들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은 적다.
만들고 싶은 것을 정말로 만들어 내는 사람은 극도로 적다.



과거 블로그 댓글




23년 추가
그래서 요즘에는 클론 코딩이라는 걸로 프밍을 가르친다. 만들고 싶은 게 없으니 남이 만든 걸 따라서 만든다는 것이다.

그치만.. 참 아깝다. 아무런 걱정이나 계산 없이 자유롭게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회사를 가면 회사가 시키는 걸 해야 하고, 창업을 해도 고객을 위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내 재미만을 위해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니 프밍을 수련하는 단계에서라도 하고 싶은 걸 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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